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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dreaming  미르(@mir991227)

전면유리앞의 탁자에 앉아 앙상한 나뭇가지를 바라보았다. 살을 에일듯 불어오는 매서운 바람에도 굴하지 않고 제자리를 지킨채 굳건히 버티고있는 나무. 위태로이 흔들리다가도 날이 풀리면 언제 그랬느냐는듯 생기 가득한 새잎을 틔워내지. 너는 무얼위해 혼자서 싸우고 있는걸까. 그렇게 괴로워하면서 말이야. 아, 그건가. 네게 소중한것. 새잎을 지키기 위해 버티고 있는건가. 멍한 귓가에 멀리 시계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더 나무를 바라보다가 손안에 들린 것으로 시선을 옮겼다. 김이 올라오는 커피. 그로인해 데워진 커피잔. 잔의 매끈한 표면을 손가락으로 가만히 쓸어보았다. 방안 가득 퍼진 커피향에 마음이 편해지는 기분이었다. 이런 몸이 되고나서 첫 위안이 되었던 그 향.

조용한 방안과는 다르게 거리는 소란스럽고 분주하다. 유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들과 나의 세상은 너무나도 달랐다. 마치 다른세계인것처럼.

커피향이 미미하게 퍼진것 외에는 모든 것이 지독하게도 시린 이 방 안이 문득 비현실적이었다. 혹시 이곳은 가상세계가 아닐까. 내가 있는곳은 누군가 만들어낸 세계이고, 창작자 마음대로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간다. 나는 이야기를 진행시키기 위해 정해진 결말을 따라 움직이는 장치. 그래, 차라리 그러면 좋을텐데. 시계소리가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

인간도 아니고, 그렇다고 구울도 아닌 저는 갈곳이 없어요. 어느쪽에도 속하지 못해.

인간과 구울 둘 모두를 이해할 수 있는건 너 뿐이야. 어느곳에나 속할 수 있어.

분명 저런 대화였던가. 어느것도 틀린말이 아니다. 나는, 어떻게하면 좋을까. 아직도 모르겠어요. 당신은 답해줄 수 있을까요, 리제씨.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어떤 결정을 하는게 맞는것인지, 내 결정으로인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내가 지키고자 하는것을 지킬 수 있을지 조차도. 단 한가지 확실한게 있다면, 어떤 길을 선택하더라도 전과같은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순 없다는것. 무채색인 이 공간이 피의 붉은색 이외의 색으로 물들 일은 없다는것.

그렇게 생각하며 컵받침에 어느새 식어버린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탈그락. 접시 특유의 맑은소리가 적막한 방 안을 울렸다.

그 순간, 마침내 시계소리가 완전히 멎고 덮치듯 따스함이 밀려왔다.

뭐야, 무슨일이 일어난거야. 주변을 둘러보니 차갑고 적막했던 방 안이 부드럽고 따뜻한 색으로 물들어있었다. 심지어 온도까지 훈훈해진 느낌이었다. 몇 번을 다시 봐도 달라지는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 미쳐버린건가.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섰다. 애초에 더 미칠 수 있는거였던가.

굳게 닫힌 따뜻한 나무색의 문 뒤로 인기척이 느껴지는것도 같았다. 대체 무슨일이 일어나고있는거야. 발소리를 죽이고 문가로 다가갔다. 확실히 문 뒤에는 누군가 있었다. 굳이 열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게 누구인지, 무슨 목적으로 왔는지도 모르면서  왜인지 문을 열어주고싶은 기분이 들었다. 문을 여는 순간 신체의 일부가 날아갈지도 몰라, 라고 생각하면서도.

열리는 문틈 사이로 언뜻 익숙한 얼굴이 보이는가 싶더니 독한 화약냄새와 함께 명쾌한 파열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머리위로 떨어져내리는 색색의 종이조각.

"Happy Birthday, 카네키!"

그리고, 귓가를 간질이는건 내가 그토록 지키고자하는 소중한 이들의 목소리. 개중에는 있을리 없는 목소리도 존재하고 있었다. 어느순간부터 마음속에 걸어들어와 나와줄 생각을 하지 않는 이들. 모두의 얼굴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나는 생각보다 이들을 더 많이 그리워했나보다. 있을 수 없는 일임을 알고있음에도 거짓이 아니기를 바라고 있으니 말이다. 더이상 얼굴을 볼 수 없을것이 분명했던 이들을 마주하는것은 생각보다 더 아프고, 기뻤다. 이것이 환상이라 할지라도.

조용히 입가에 미소를 매달았다.

"고마워요, 다들."

그 이상 더 무슨말을 할 수 있을까. 하고싶은 말은 많았지만 꾹꾹 눌러담고 가만히 뚜껑을 닫았다. 혹자는 겨우 축하하러 와줬더니 반응이 미적지근하다며 불만을 토로했지만.

아끼는사람끼리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데 하루라는 시간은 부족했다.  어느새 해가 지고, 온통 어둠에 덮힌지 한참 지났음에도 이야기는 한창이었다.

이 꽃이 예쁘고, 저 옷은 어떻고, 이런게 재미있고. 시끌벅적함은 조용했던 공백을 먹어치우고 그자리를 차지했다. 그렇게 한참을, 웃을 수 있었다. 자정이 다 되어갈 무렵.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일어서 헤어질 준비를 했다. 서로가 알고있었다. 이제  헤어져야만 해.

아무일 없다는듯, 평범한 인사를 나누고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문을 닫았다. 채 가시지 못한 온기는 심장이 아플정도로 선명했다. 문에 기댄채 스르륵 주저앉았다. 뺨을 꼬집어보았다. 이 감각은 거짓이 아니었다.

두 무릎을 모아 끌어안았다. 얼굴을 무릎에 파묻고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어느새 데워졌던 공기가 모두 식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것처럼.  그래. 말도 안되는 망상이었지. 저조차 잊고있던 생일. 특별할것없는 그 날에 어떠한 기적이 일어나리라 바랐던건가.

실소를 지으며 비틀비틀 몸을 일으켰다. 비워진 커피잔을 들고 뒤로 돌았다. 그들이 앉았던곳. 아니, 앉았다고 생각했던 곳. 이미  차갑게식어버린 소파는 외로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그대로 소파를 지나쳐갈때였다. 무언가 위화감이 들었다. 천천히 살펴보았다. 검은 산양의 알. 그 책 사이에 의도한듯 툭 튀어나오게 꽂혀있는 작은 쪽지 한장. 언제 끼워놓은거더라.

자연스레 손을 뻗어 아무렇지 않은척 책을 열고 쪽지를 꺼내들어 읽었다.

- Happy birthday, 카네키. 선물 꼭 찾아봐!

뛰듯이 걸어 문을 벌컥 열었다. 문앞에 있는것을 본 나는 그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분명히 기쁜데, 심장이뜯어질것처럼 아팠다. 너무 기쁜 나머지 과부하가 걸린걸까. 맑고 투명하고 따뜻한 액체가 손등위로 떨어져 내렸다. 웃음이 나오는 동시에 눈물도 흘러나왔다.

나 지금, 너무 행복해요..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을정도로 행복해요.

만약 이게 한낱 백일몽이라 할지라도,  잠시 동안은 모든걸 접어두고 행복해도 되는거겠죠.

오늘만은 나, 행복해도 된다는 뜻이겠죠. 

​만약 이게 한낱 백일몽이라 할지라도.

Birthday (cover) - 한스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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