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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usion 이렌(@1031x1217)

 

[히데카네]

- 어이, 카네키!

히데구나. 익숙한 목소리와 말투로 내 이목을 사로잡는, 조금은 소란하면서도 사소한 일상이다. 나는 이따금씩 책의 문장들에 몰두하는데, 그럴 땐 바로 옆에서 나를 불러도 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린 시절부터 그런 나를 알고 있는 히데는 저 멀리서부터 초원을 질주하는 물소처럼 날쌘 속도로 달려오면서 내 이름을 외치곤 했다. 팔로 어깨 부근을 툭 건드는 손길이 빠르고 날렵하지만 전혀 매섭지가 않다.

- 카네키, 생일 축하해!

아, 벌써 날이 그렇게 된 건가? 머쓱하게 웃어 보이자 자기 생일도 기억 못 하냐는 가벼운 타박이 돌아왔다. 해바라기가 잔뜩 그려진 포장지로 화사하게 감싼 상자 하나를 내게 건네준다. 상자의 크기는 그리 크지 않은데 사이즈에 비해서 꽤 묵직하다. 히데, 이거 지금 열어봐도 돼?

- 당연하지. 별로 거창한 건 아니야.

나는 내용물이 혹여라도 상할까 조심스레 상자를 뜯어보았다. 검은 하드커버의 두꺼운 책의 뒷면에서 나는 익숙한 구절을 발견했다. 검은 표지에 금박으로 입혀진 타카츠키 센의 문장. 잠깐만, 히데. 이거 검은 산양의 알 애장판이잖아? 구하기 힘들었을 텐데.

- 운 좋게 구했지. 좋아해서 다행이야. 그나저나 배고픈데 뭐 먹으러 안 갈래?

히데와 친해지기 전의 나는 내 생일을 조용히 보내는 편이였다. 흐릿한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어머니와 함께 집에서 폭죽을 터트리던 기억이 떠오른다. 직접 구운 케이크를 건네며 생일 축하한다면서 달큰한 설탕 내음이 묻어난 손으로 나를 따스하게 안아주시고, 우리 아들 다 컸다면서 머리를 쓰다듬어주셨던 것 같은데. 아련한 옛 기억이 떠올라 멍하니 있었나 보다. 히데가 내 이름을 거듭 불렀다. 미안, 히데. 선물에 정신 팔려있었나 봐. 정말 고마워. 우리 빅걸이나 갈까?

#

- 카네키. 늘 먹던 걸로?

응. 히데, 갑자기 든 생각인데 우린 맨날 빅 햄버그랑 달걀 프라이 버그만 먹은 것 같아.

- 새삼스럽게. 그치만 그만한 메뉴가 없잖아? 가끔 오니까 질리지도 않고.

특별한 일이 있으면 항상 히데와 함께 오곤 하는 빅걸에서도 우리가 선호하는 자리가 있었다. 우리가 제일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앉았던 자리인데, 창밖 풍경이 유독 잘 보였다. 나름 치열한 자리인데 오늘은 비어있다. 내 앞에 앉은 히데의 금발 머리카락은 하늘이 담긴 유리창을 배경으로 옅게 하늘거렸다.

주문하신 메뉴 나왔습니다,라는 종업원의 예의 차린 말과 함께 돌판 위에서 지글거리는 소리를 내며 익어가는 햄버그가 나왔다. 나는 먼저 시켜두었던 커피로 입만 축이곤 고기를 잘게 써는 일에만 집중했다. 먹기 좋은 한 입 크기로 난도질을 하고 보니 어느새 덜 익은 고기에서 조금씩 배어 나오던 핏기가 싹 가셔있었다.

- 카네키.

……

- 카네키?

어, 응. 히데. 미안해.

- 왜 안 먹고 그래? 오늘 너 좀 이상하다. 무슨 일 있는 거야?

아니야, 히데. 무슨 일이라니? 난 괜찮아.

나는 대강 말을 얼버무리곤 황급히 포크로 햄버그를 집어 들었다. 웰던으로 구워진 고기는 좀 질겼지만 나는 끝끝내 한 접시를 다 먹어치웠다. 그런 나를 히데는 조금 걱정스러운 눈으로 보았던 것도 같다. 급하게 먹다간 체한다는 약간의 잔소리를 곁들이는 히데를 응시하며 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오늘도 맛있네. 역시 빅걸이라니까. 한마디 말을 덧붙이며.

점심을 먹고 우리는 헤어졌다. 골목길 앞에서 히데는 나의 안색이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겨울이라 집 밖에 잘 안 나가서 그럴 거라 답했으나 히데는 머리를 긁적이기만 했다.

반나절 가량 비워졌던 집에 돌아오니 싸늘한 기운이 돈다. 집이구나. 오늘따라 유독 진하게 몰려온 적막감에 휘감긴 건 잠시였고,  나는 현관에 가방을 던진 후에 화장실로 재빨리 달려갔다.

변기 앞에 무릎을 쪼그리고 앉아 입안에 손가락 두 개를 집어넣었다. 목구멍과 혀를 손끝으로 쑤시고 짓누르며 위에 담긴 것들을 토해내기 바빴다. 역겨워. 질긴 고무 덩어리 같은 고기를 억지로 삼켜내는 것은 고역이다. 위액 범벅이 된 토사물로 가득 찬 변기를 바라보며 나는 또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깰 수 있는 꿈이 아니라는 것을 또다시 깨닫고 만다.

먹을 수 없는 것을 억지로 삼켜서인지 몸 상태도 그다지 좋지 않고 허기만 더 심해진 것 같다. 급히 물을 끓이고 인스턴트 커피의 향이 방에 널리 퍼져나가자 지친 몸에 조금이나마 기운이 돌았다. 나는 소파에 기대 고개를 뒤로 젖히고, 피곤이 가득 쌓인 눈가를 손으로 매만졌다. 

나는 네가 이곳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 히데. 단지 인정하지 않고 있을 뿐이야. 내 생일은 항상 연말과 함께 다가오잖아? 크리스마스와 한 해를 마무리하는 벅적한 분위기 속에서 홀로 맞이하는 생일은 외로워. 몇 년 동안이나 나는 너와 함께 생일을 보내왔던 걸까. 그것에 익숙해졌나 보다. 사람의 빈자리가 크게만 느껴지고 나는 너를 진심으로 보고 싶어. 너는 어디에 있는 걸까. 그리고 나는 어디서 너를 찾아내야 할까? 아무도 답을 알려주지 않는 질문을 나 자신에게 던져본다. 무의미하다는 걸 알면서도.

 

#

- 절그럭.

거센 족쇄가 느슨해졌다.

양은 더 이상 무기력하게 매여있지 않고, 곧 울타리를 뛰어넘어 자신의 잿빛 하늘을 되찾게 된다.

Birthday (cover) - 한스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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